
20여 년 동안 멈춰 서 있었던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이 최근 법원의 판단으로 다시 시동을 걸 수 있게 되었다. 법원은 서울시의 고도 관리 조례 개정이 적법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종묘 인근 일부 구역에 대한 개발 계획 수립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세운4구역을 비롯한 노후 도심 재생이 오랜 답보에서 벗어날 기반이 마련됐다.
이 판결은 단순히 ‘개발 가능 여부’를 넘어, 서울 도심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의 사회 분위기는 이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소비하려는 경향이 적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에서는 고도 제한을 둘러싼 개발·보존 논쟁을 정치적 유불리의 틀에 끼워 넣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세운4구역 재개발이 마주한 숙제는 정치적 구호로 해결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해외의 사례들이 잘 보여주듯, 이는 전문가적 분석·도시계획적 판단·사회적 합의가 존중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세인트 폴과 파리, 도쿄가 보여준 길: 고도제한은 ‘높이’가 아니라 ‘정교화’의 문제 자주 언급되는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사례를 보자. 많은 이들은 영국이 고도 제한을 완화했다거나 해제한 것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영국은 조망축(View Corridor)을 오히려 더 섬세하게 조정하면서, 성당의 상징성과 도시 경관을 지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도화했다. 그 결과 런던은 보존과 고층 개발이 공존하는 세계적 예를 만들어냈다.
파리 또한 에펠탑 조망축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대신, 고층 개발을 라데팡스 구역으로 분리해 조화를 이뤄냈다. 도쿄 역시 도쿄역 역사 주변의 경관을 지키기 위해 바로 앞 블록은 저층으로 유지하고, 그 배후에 초고층 스카이라인을 배치했다.
이들 도시가 말하는 공통된 메시지는 명확하다. 고도 제한은 완화냐 강화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어떤 경관을 보호하고 어떤 구역에서 발전을 도모할 것인지에 대한 도시적 설계의 문제라는 점이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종묘는 세계유산이자 한국의 도시 사적 자산이다. 동시에 세운4구역 일대는 서울 도심의 산업·상업 기능을 회복해야 할 핵심 지역이다. 보존과 개발을 대립시키는 순간 논의는 정쟁으로 흐르고, 본질적 해법 마련은 멀어지게 된다.
전문가 집단이 중심이 되고,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법원의 판결로 개발의 법적 제약이 완화된 지금, 다음 단계는 더욱 정밀한 도시계획적 검토다.
구체적으로는 △종묘의 조망·경관 분석, △세운지구 내·외부의 스카이라인 재설정, △보존 구역과 고도 조정 구역의 과학적 구분 등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 건축·도시계획·문화재·경관 전문가들이 중심에 서야 한다. 이들의 분석을 토대로 시민사회와 지역 이해당사자가 함께 참여하는 합의형 도시계획 과정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의견 수렴이 아니라, 세계 선진 도시들이 채택하는 도시계획의 기본 원리다. 서울은 지금 세계적 성공 사례를 만들 기회를 얻었다.
세운 재개발은 단순한 건물 몇 동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정치적 갈등과 법적 논란 속에서 멈춰 있었던 도시의 한 축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남은 과제는 이 기회를 △정치적 구호가 아닌 전문성 기반의 도시계획 △개발과 보존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적 합의 △지역 상생을 위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체계를 통해 서울만의 세계적 성공모델로 만드는 일이다.
세계의 수많은 성공 사례에서 보존은 개발의 핵심 요소임이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보존으로 현재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적이양제라는 제도가 만들어져 있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제도를 더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세운은 과거 서울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수많은 시민의 삶과 기억을 품고 이번 재개발이 서울의 도시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서울시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 왔음을 잘 알고 있다. 분명 생각을 달리하는, 많은 이견도 있겠지만, 조화롭게 풀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적 논쟁이나 인신공격을 멈추자. 도시는 정치적 논쟁보다는 진정성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과 대립을 극복한 시민들의 합의로 발전한다.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더 논의하고 더 기다리자. 이번 논쟁이 세운 재개발을 보존과 개발의 세계적 성공 사례로 만드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